Page 151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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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선생은 장동김씨(원 뿌리가 안동일 뿐 한양의 장동壯洞에 대대로 살았기에
             안동김씨와 구별하여 장동김씨라고 함) 세도정치 시기(1800〜1863)에 그 집안으로
             공조판서와 판부사를 지낸 김온순金蘊淳(1812〜?)의 아들로 태어나 철종 때

             에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등을 지내다가 1884년의 갑신정변甲申政變으

             로 물러났다.
               그 이후에 다시 전라도 관찰사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봉기의 진압
             을 담당하기도 하였고, 1895년의 을미사변乙未事變 때에는 개화파 세력을

             규탄하고 일본에 있는 유길준兪吉濬(1856〜1914)과 박영효朴泳孝(1861〜1939)

             의 처벌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궁내부특진관, 탁지부대신 등 여러 요직
             을 맡아 집권세력의 중심인물로 활약하였다.

               그는 1902년 경운궁慶運宮의 중화전영건도감中和殿營建都監에서 중화전中
             和殿의 현판을 담당하기도 했고, 고종의 환갑 잔치와 기로소 입소 잔치를

             관장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이러한 그의 임무에 비추어 볼 때 고운사에 연
             수전을 지을 때도 행정총감독은 천광록이 맡고 인적 물적 준비는 만우화
             상이 책임을 맡았지만, 연수전의 전체 설계와 장식 등의 구상에서는 김성

             근 선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당시에 연수전과

             고운사에 여러 현판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당대의 명필로 뛰어났는데, 그의 글씨는 왕희지王羲之(307〜365)에
             서 내려오는 첩파帖派의

             글씨를  이어받은  풍을

             간직하고 있다. 연수전
             의  현판이나  만세문의
             현판은  기본적으로  이

             러한 풍격을 가지고 있            사진 6. 김성근 글씨, 무릉정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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