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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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이 총괄적인 책임을 맡았
             다. 삼문三門이 세워지고 봉향
             각奉香閣, 수직관守直館 등의 건

             물이 세워지면서 축리전의 이

             름이 연수전으로 바뀌고, 고종
             과 왕비의 전패殿牌를 봉안하여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건물로 되었다. 어첩은 원당에
                                            사진 1. 연수전.
             봉안하였다.  연수전의  관리와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한 「연수전수호절목추후마련延壽殿守護節目追後磨
             鍊」이 제정되어 왕실의 든든한 후원을 입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 징청방澄淸坊에 있는 기로소에 입사한 왕으로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이 있는데, 태조의 입사 여부는 불명확하다. 숙종의 어첩
             은 1719년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1648〜1722)이 주도하여 지은 한양 기로소
             의 영수각靈壽閣에 봉안하였고, 영조의 기로소 원당은 고운사가 되었으며,

             고종의 기로소 원당은 순천 송광사가 되었다.

               송광사의 성수전聖壽殿은 일본 식민지 시기에 전패가 없어지고 관음전으
             로 바뀌어 현재는 관음전 일부 벽면의 그림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래서 현재 기로소 입사를 계기로 어첩과 전패를 봉안하는 건물로는 고운

             사 연수전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어서 보물로 지정되

             어 있다. 기로소 입사첩인 어첩에는 해당 임금의 생년월일, 입사년월일,
             어명御名, 아호雅號가 기록되어 있다. 원래 기로소는 신하들의 상징적인 공
             간이라서 임금이 입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영조와 고종은 기로소

             의 입사를 강력하게 원하여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1909년(순종 2)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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