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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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쉬운 한글체로 법어를 내리셔야 남북의 8천만 동포들이 귀를 기울일 것
          이라고 간언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동안 ‘곰새끼’라고 나무라기만 하시던
          상좌의 고언을 받아들여 2~3일 퇴고 끝에 한글법어를 내려주신 성철 종

          정예하의 시대의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시는 모습은 존경스럽고 존경

          스러우며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몸
          에 전율이 흐릅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나는 종정이 되었어도 해인사 산중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도 평생 지켜 주셨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특히 서울에

          계시는 신도님들께서 “아무리 그렇지만 어떠한 종정 스님도 서울에 오셔
          서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시고 법문도 자주 하셨습니다. 성철 종정께
          서는 너무 하십니다.”는 원성이 높아 갔습니다. 저도 조바심이 나서 종정

          예하께 신도님들이나 스님들의 뜻을 전해 드리면 묵묵하시다가 “이놈아!

          니도 한편이가? 서울 올라가서 대중 앞에서 떠드는 것보다 해인사 산중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더 힘든 일인지 니도 모르나 보네.” 하시
          며 낙담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열반에 드신 후 해인사 주변에서

          일어난 방광 현상이며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다비식과 사리 친견법회는 저

          에게 아직도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새 산야는 푸른 물결로 출렁이고 슬슬 훈풍이 불어오더니 차분히 내
          려앉은 어둠 사이로 저 멀리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어둠 사이

          로 오색 연등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올해엔 어떤 법문이 불자

          는 물론 국민들의 심금을 울릴지 기대가 되면서도 ‘곰새끼’ 상좌의 말을 경
          청해서 과감히 한문을 버리고 한글로 법어를 내려주셨던 나의 은사인 성
          철 큰스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를 드리며 다시 한번 “자기를 바로 보라.”

          고 하신 큰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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