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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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모델은 육조스님이다. 육조스님은 스승에게 인정받은 뒤 남방으로 내
             려가 15년을 숨어 산다. 15년간 스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냥꾼의 무리에 섞여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 평

             범함의 정도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남몰래 지키기가 묘

             하다. 무엇인가 특별한 경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부하지 않고
             내려놓기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깨달음에서 미혹으로 들어가는 이는 소털처럼 많

             고[下士如牛毛], 깨달음에서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는 기린의 뿔처럼

             드물다[上士如麟角].” 중국 근대의 4대 고승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광印
             光스님의 말이다. 소털이 될 것인가? 기린의 뿔이 될 것인가?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 눈 뜸 이후, 정신없이 들이닥치는 신묘한 경계에 대한 자

             부심을 내려놓는 일이다. 깨달음의 체험은 곧 자아의 높은 산을 쌓아올리

             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스승의 내실에서 자신의 체험이 부처님과 조사들의 그것과 다르
             지 않음을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가 된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사지오관을 다 갖추었지만 제대로 걷고 제대로 말하려면 잘 성장해야 한다.

             불이不二의 이치를 체험한 구도자도 이와 같다. 자칫 도로 미혹해질 위험이
             있으므로 혹은 실력 있는 스승 밑에서, 혹은 남모르는 곳에서 손님이 오면
             오는 대로, 손님이 가면 가는 대로 맡겨놓는 살림이 필요한 것이다.

               보통 이것을 지해적 깨달음[解悟]에서 실질적 깨달음[證悟]으로 나아가는

             돈오점수의 이치로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지해적 깨달
             음, 즉 해오가 실질적 깨달음을 세우는 기초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실질
             적 깨달음을 가리는 장애가 되는 것일까? 기초가 된다면 잘 지켜야 할 것

             이고, 장애가 된다면 잘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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