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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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천제스님은  통영
             안정사와  은봉암  사이
             에 초가삼간 토굴을 짓

             고 천제굴闡提窟이라 이

             름  짓고  6.25를  보낸
             성철스님께  1953년에
             출가를  하셨으니,  소

             납보다는 20년 빠르게

             큰스님을 시봉하신 역
             사를 가진 맏사형님이
             십니다.
                                    사진 2.  백련암 옛 모습. 불면석과 마름모꼴 축대가 길게 보인다.
               소납이  72년  1월에

             출가하고 처음 맞이한 정초 아비라기도에 동참한 신도분들은 대략 20여
             명으로 기억됩니다. 그 후 1년에 네 번 치르는 아비라기도 동참자 숫자가
             조금씩 늘어갔습니다만 좌선실이 크게 좁게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

             다가 1981년 1월 10일에 큰스님께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되

             십니다. 당시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山是山 水是水]”라고 하는 선종 조사의
             취임 법문으로 큰스님은 일세를 풍미하게 되십니다. 그 후로 아비라기도
             에 동참하는 신도 수가 늘게 되고 갈수록 더욱 그 속도가 빨라지더니 그때

             까지의 건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앞마당

             에 군용 텐트를 치고 담요를 두르고 공간을 마련한다고 분주를 떨어도 신
             도님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들어오는 문도 없
             는 시절에 1층은 공양간과 세면장, 2층은 기도 공간으로 하여 30평 건물을

             짓고 정념당正念堂이라 현판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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