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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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말씀드리니, “실컷 고생하고 백련암을 떠나려 하느냐?”라고 서운해
하셨습니다.
원택스님도 소납이 사미계를 받기 2주 전에 성철스님께 신 행자가 사미
계를 받으면 승가대학에 가려고 하는 듯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면서, 큰스님의 묵언默言은 반대하는 뜻은 아니라
고 하셨습니다. 원택스님은 그 말을 꺼내자마자 “다른 은사 정해 줘라.” 하
실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큰절에 내려가면 생활을
잘하라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철스님 상좌 중에서 해인사승
가대학에 입학한 ‘최초의 상좌’가 되었습니다.
소납이 승가대학에 가려는 이유는 큰절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 승가대
학에 다니는 스님들이 새벽 3시에 대적광전에서 아침예불을 드린 후 4시
에 승가대학으로 내려와서 5시까지 100명이나 되는 스님들이 경전을 합송
하는 소리는 세상의 어떤 음악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힐링
시키는 천상의 소리였습니다. 대학생들이 수련대회에 왔다가 해인사 아침
예불과 경전 독송하는 소리에 감동을 받아 출가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
었습니다.
백련암에서의 생활은 외출을 못 하게 해서 그것이 힘들지 큰절 행자실
에서 하던 일의 강도에 비하면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 9시에
누우면 금방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상좌들이 생활하는 큰방 옆에 다락방
이 있었는데, 승가대학에서 배우는 경전과 선어록, 한글 번역본이 30권 정
도 쌓여 있었습니다. 전등이 있어서 불을 켜면 책을 볼 수 있어서 밤 9시
삼경이 되면 자지 않고 밤 11시까지 책을 보다가 잤습니다.
백련암 행자생활 두 달째 되는 밤에 동국역경원에서 출판한 『수능엄경』
을 보고 있는데, 다락문이 갑자기 열렸습니다. 성철스님께서 화장실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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