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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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해인사 행자 시절. 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필자.
를 지고 백련암 뒷산으로 올라가 말라 죽은 고목나무를 한 짐씩 하러 갔습
니다. 그때는 취사와 난방을 나무로 하던 때입니다. 저녁공양 후 108참회
로 예불을 드린 후 공부를 하다가 밤 9시에 취침을 했습니다.
백련암의 교육방법은 처음에 능엄주와 108참회문을 외운 다음 『초발심
자경문』과 『사미율의』, 대승경전과 선어록 등은 백련암 다락방에 비치되어
있는 국역본으로 자습을 하고, 1년간 의무적으로 일본어를 독학하도록 했
습니다. 그 이유는 범어梵語로 된 경전들이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
기 때문입니다. 백련암에서 2~3년간 살면서 일어판 경전과 선어록을
20~30권 정도를 본 후 비구계를 받으면 선원으로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
였고, 해인사승가대학에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성철스님의 지시에 의해 백련암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는데, 시장에
가서 식품을 구입하는 원택스님 외에는 결제 해제 구분 없이 큰절에도 못
갔습니다. 외출이 허락될 때는 예비군과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 결제 때 성
철스님이 법문하시는 날, 아파서 병원에 가는 날 외에는 사실상 외출은 불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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