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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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교신문과 경전과 선어록 외에는 일간신문과 잡지, 외전을 일
             절 보지 못하게 하고 라디오와 TV시청도 금지했는데, 백련암에서 살다가
             도중에 하산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갑자기 출입이 통제되는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소납도 처음에는 힘들어서 소임을 보고 공부를 하는 시

             간 외에는 틈을 내어 백련암 뒷산으로 매일 1시간씩 등산을 하여 적적함을
             달랬는데, 외부의 정보와 철저히 단절된 시간은 세속의 속물을 빼내고 철
             저한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소납은 행자 때 1년간 백련암에 살고, 사미계를 받은 후 해인사승가대학

             과 율원을 마친 후 1984년에 자청하여 백련암에 올라가 큰스님 시봉하기 1
             년을 더하여 도합 2년을 살았습니다. 백련암에선 채공 소임을 맡았는데, 원
             택스님으로부터 연근과 우엉과 콩을 졸이는 법, 김치 담그는 법, 국수 삶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큰절하고 암자(백련암)에서 배운 음식 솜씨로 해인사 승

             가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음력 3월 대장경 정대불사 때 전국에서 신도들이 수
             천 명 오는데, 소납은 갱두 소임을 맡아 관음전 큰 가마솥 2대에 근대국, 아
             욱국, 미역국을 번갈아 가며 장작불로 끓여 하루에 120솥이 넘게 대중공양

             을 올렸는데, 국맛이 좋다고 사부대중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해인사승가대학에 입학한 백련암 ‘최초의 상좌’



               백련암에서 1년간 행자생활을 해도 해인사승가대학에 입학하려 하면 성

             철스님의 상좌가 될 수 없었고 산중의 다른 스님을 은사로 모셔야 했습니
             다. 사미계를 받기 두 달 전에 원택스님에게 해인사승가대학에 가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리고, 백련암에서 행자 신분으로 큰스님을 모시고 산 시간

             은 영광으로 생각하겠다는 것과 은사스님은 산중의 다른 스님을 찾아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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