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7 - 선림고경총서 - 01 - 선림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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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
니다.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
환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 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저 사문(沙門)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대덕(大德)은 어디서 왔
기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육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지게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
상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은 아만심이 탱천
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는 힐난입니다.그러나 육조스님이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이렇게 한번 슬쩍 법을 걸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스님께서
“나고 죽는 일이 크고,무상(無常)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
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
셨습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육조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
다고 하니 그 무상(無常)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남이 없
음[無生]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 버린 구경을 성
취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
는 것입니다.이대로가 남이 없고 이대로가 빠름이 없는데,다시
남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스님이
반박하자,육조스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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