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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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語西話 續集 上 111
덕에 안주한다’고 하였습니다.이른바 지(止)로써 산란을 고요히
중지시키고 항상 관조하며,관(觀)으로써 혼침을 관조하여 항상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그 때문에 고요와 관조가 쌍으로 나타
나고,정(定)과 혜(慧)가 융합하여 지(止)가 극치에 이르면 관
(觀)이 원만합니다.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무엇이 진실이겠습
니까?
분명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지․관의 명칭이 혼합되었다
면 정․혜의 본체를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이론과 실제
가 잘못됐으므로 당신의 말씀은 옳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슬프다.듣지도 못했습니까? 법화경 에서 말하기를,‘일승
만 진실이고 나머지 이승은 진실이 아니니라’하지 않았습니까?
지관․정혜․적조․체용 등은 이치가 본래 다름이 없는데 명칭
만을 달리 붙였을 뿐입니다.그러나 진실로써 방편에 나아간다
면 2변(二邊)이 각각 성립되지만,방편을 돌이켜 진실로 귀결한
다면 ‘하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만일 방편과 진실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이론과 실제는 저절로 오류가 됩니다.
신령스런 비춤은 상대가 끊겼고 진실한 깨달음은 의지함이
없는데,실로 일념(一念)이 홀연히 일어난 것을 연유하여 만법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자못 알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또 미
혹과 깨달음이 다른 생각이 아닌데 얻고 잃음에 어찌 두 사람이
있겠습니까?그러므로 성인이 베푼 가르침이 백천 가지로 모두
다르지만 근기와 사람 됨됨이에 알맞게 하여 허망을 버리고 집
착을 제거하게 할 뿐입니다.이는 모두가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