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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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語西話 上 51
하는 마음을 허망하게 일으켜 얼굴이 꺼멓게 되고 발에 못이 박
히도록 숨돌릴 겨를 없이 분주하기만 하다.만일 무궁한 업에
매일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공직에 나가 있을수록 더더욱 업에
얽히고 만다.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또한 두 종류가 있다.숨어서 은둔
하는 생활을 고상하게 여겨 도념(道念)을 지키기만 하는 부류가
있고,조용하고 한가한 것을 숭상하여 세상을 업신여기는 부류
가 있다.이 두 부류를 모두 공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그러나
진짜 물러나는 것과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크다.정말로
타인을 위해 일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고 세상을 교화할 만한 재
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서 공직에서 물러나 은거해 열심히 도
를 닦는 경우가 있다.그런가 하면 자기의 수행을 마치지 못해
감히 세상일에 망령되이 간섭하지 않고 깊은 산 속에 은거하여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자신과 세상을 잊어버린 경우가 있다.이
런 물러남이야말로 비로소 도에 합치된다고 하겠다.그러나 개
중에 어떤 사람은 교제를 끊게 되면 구애를 받지 않아,먹고사
는 것에 부족함이 없어 따로 세상에서 더 구할 것이 없다고 뽐
내기도 한다.따뜻한 옷에 배불리 먹으면서 제멋대로 지낸다.그
러면서도 스스로는 “속세를 끊었다”고 말한다.높은 누각에 누
워서 쓸데없는 이야기나 늘어놓으면서 도리어 대중들을 나무라
고,공적인 소임을 맡은 사람을 비웃기도 한다.게으르면서도 부
끄러운 줄을 모르고 자기가 여태껏 입은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른
다.이럴 경우 어찌 공직에서 물러나 도를 닦는 자라 할 수 있
겠는가?그러다 어느 날 문득 받은 인연[報緣]이 다한다면,앞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