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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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경학(經學)을 강론하는 자들이 일찍부터 주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그러나 주장은 했으면서도 실제 이치는 깨닫
지 못했다.그 까닭은 알음알이로 문자에 의지해 이해했을 뿐
오묘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오묘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
문에 주관․객관의 자취가 뚜렷해졌고,알음알이가 많아질수록
미혹의 정은 더욱 무거워진다.이른바 ‘깨달음’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그것은 이 한마음의 지극한 본체를 직접 보았
다는 것이다.그럼 ‘알음알이’란 무엇이겠는가.그것은 3제(三諦)
의 헛된 자취만을 마냥 연구한 것이다.그러나 깨달음은 알음알
이와 다르고,알음알이는 깨달음과 다르다.깨달음의 본지는 마
음으로는 통하지만,말로 의론할 수는 없는 것이다.진실하게 참
구한 사람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학문으로 이해한 것
이 설사 현묘하고 현묘하다 할지라도 신묘한 깨달음과는 견줄
수가 없다.
15.애증심으로 도를 깨칠 수 있는가?
정(情)은 애(愛)와 증(憎)때문에 생기고,자취는 진(進)과 퇴
(退)때문에 생긴다.바로 이 애증과 진퇴 때문에 인간이 생사에
유랑하며,3계(三界)에 윤회하게 된다.그러나 이것은 세간을 초
월하고 멀리 성도(聖道)에 계합하여 보리를 신속하게 증오(證悟)
하는 첩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