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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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語西話 下 75


            웃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상히 여겼다.일곱 살이 되자 나는 외
            전(外傳)인  논어(論語) ․ 맹자(孟子) 를 읽었고,아홉 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잃어서 그만 학문을 중지하였다.어려서부터
            출가할 뜻을 갖고 있었지만,세상일에 얽매여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그러다 24세가 되자 그 속박이 자연히 풀

            렸다.이때가 바로 지원(至元)연간의 병술(丙戌:1286)년이었다.
            이 해 5월 산에 올라 고봉(高峰)스님의 제자로 들어갔다.이윽고

             금강경 을 지송하던 중,“여래를 걸머진다[荷擔如來]”는 문구에
            서 분명하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이로부터 경서(經書)와 어록
            (語錄)의 맛에 상당히 심취했는데,깨닫지는 못했었다.그 이듬

            해인 정해(丁亥:1287)년 2월에 우바새 양씨(楊氏)가 생활용품
            을 주어 산해옹(山海翁)을 따라 산에 올랐는데,그때야 비로소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었다.기축(己丑:1289)년에 당사(堂司)
            의 소임을 맡았었고,경인(庚寅:1290)년에 몰래 이곳을 떠나려
            하다가 그만 송공(松公)에게 들켰다.그래서 다시 기름진 전답 3

            묘(三畝)를 도와주어 참선을 하였다.그런 지 얼마 안 되어 코피
            가 나는 병에 걸려 그것도 그만두고 스승[先師]의 시봉을 했다.
               신묘(辛卯:1291)년 봄에 구공(瞿公)이 전장(田莊)을 시주하

            였으나,편지를 해서 되돌려주게 하였다.임진(壬辰:1292)년에
            는 고무(庫務)의 소임을 맡았다.

               계사(癸巳:1293)년과 갑오(甲午:1294)년에는 시주의 문전
            이 분주했을 뿐이다.원정(元貞)연간 을미(乙未:1295)년에는
            스승께서 병으로 누우셨는데,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장례를

            마친 나는 즉시 산을 떠나 오랜 뜻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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