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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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배고픈 사람 앞에 밥을 갖다 놓고는 그 밥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덕스님들의 훈계에,“다른 사람의 잘못과 나
의 옳음을 들추지 않으면,자연히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
고 윗사람도 아랫사람을 공경하며 서로 존경하게 된다.그렇게
되면 불법은 시시때때로 드러나고,번뇌는 그때그때마다 사라지
리라”고 한 말씀이 있다.참으로 옳으신 말씀이다.그런데도 그
교훈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까닭은 알음알이가 있어 상대방의 시
비를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요컨대 집착을 끊는 데는
알음알이를 없애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고,알음알이를 없
애는 데는 본성을 깨닫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본성을
깨닫고 나면 알음알이는 굳이 없애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
지며,알음알이가 없어지고 나면 시비에 대한 집착은 봄날 서리
가 밝은 햇빛에 녹아내리듯 하리니,교화가 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7.내가 살아온 길[天目中峯]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항주(杭州)의 신성(新城)땅에서 살았으
며,성은 손씨(孫氏)이다.그런데 할아버지 대에 전당(錢塘)땅으
로 이주하여 부모가 그곳에서 일곱 자녀를 낳았는데,나는 그
중 제일 막내였다.나는 겨우 포대기를 떠나던 시절부터 범패
(梵唄)를 읊조리고 불사(佛事)를 흉내내며 소꿉장난을 했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