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선림고경총서 - 03 - 동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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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語西話 下 77


            (定叟)스님을 대각사(大覺寺)로 보내어 머무르게 하였다.그리고
            나는 환산암(環山菴)에 가 머물렀다.

               연우(延祐)연간 갑인(甲寅:1314)년 봄에는 다시 사자원(師
            子院)의 일을 맡았다.이듬해 을묘(乙卯)년에는 대와(大窩)땅에
            암자를 지었고,병진(丙辰:1316)년 봄에는 당뇨병이 생겨 고생

            하였다.그 해 여름에는 남심(南潯)에 배를 정박시켰다.
               정사(丁巳:1317)년에는 단양(丹陽)땅의 대동암(大同菴)에서

            거처하였다.그 이듬해 무오(戊午)년에 다시 천목산으로 되돌아
            왔다.기미(己未:1319)․경신(庚申:1320)에서 지치(至治)연간
            의 신유(辛酉:1321)․임술(壬戌:1322)에 내 나이 60세가 되었

            다.이 해 여름 중가산(中佳山)에 암자를 지었다.출가했던 병술
            (丙戌:1286)년에서 60세가 되던 임술(壬戌:1322)년까지 37년

            간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허깨비 같은 자취를 멀리 이끌고
            가서 인연을 피할 계획을 세웠다.
               내가 처음 발심하여 출가했던 뜻은 초의(草衣)에 때묻은 얼

            굴로 두타행(頭陀行)을 익히려 했던 것인데 외람되이 가사[田衣]
            를 입었으니,결국 종신토록 부끄러움만 안게 되었다.그렇다고
            문자를 주물렀지만 학문을 완성하지도 못했고,참구했지만 깨달

            아 밝히지도 못했다.평소에 쓸데없는 일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
            람들이 칭찬했던 것은 보연(報緣)의 우연일 뿐이었다.항상 은퇴

            하여 쉬는 것을 흠모했을 뿐이고,세상을 바로잡거나 세속의 일
            을 끊지도 못하고,앉아서 신자들의 시주만 받아먹었으니 위태
            롭고 불안할 뿐이다.

               옛 사람은 나이 50이 되어서 지난 49년 간의 잘못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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