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선림고경총서 - 04 - 치문숭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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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치문숭행록
(表文)을 아뢰고 그 잘못된 점을 끝까지 주장하였다.황제는 재상
잠문본(岑文本)으로 하여금 설득하여 돌려보내게 하였다.지실스
님이 고집하여 조서를 받들지 않자 황제가 진노하여 스님을 조
당(朝堂)에서 매를 때리게 하고,속복을 입혀 밖으로 유배케 하였
다.
어떤 사람이 그가 진퇴(進退)를 헤아리지 못하였다고 나무라
자,스님은
“나도 처음부터 형세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러
나 끝까지 다투었던 까닭은 후세에 대당(大唐)에 스님이 있었다
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함 때문이었다.”
하니,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11.마음을 방비하여 허물을 떠나다[防心離過]
송(宋)대 변경(汴京)땅 선본(善本:1035~1109)스님은 동씨(董
氏)로 한(漢)대 중서(仲舒)의 자손이다.여러 분야의 학문에 박식
통달하였으며,원조 종본(圓照宗本)스님에게 출가하였다.철종(哲
宗)때 법운사(法雲寺)에 머물렀으며 대통(大通)이라는 법호를 하
사받았다.
평소 몸가짐은 앞만을 직시하고 눈을 깜박이지 않았으며,30
년을 대중과 함께하면서 단 한 번도 실없이 웃는 일이 없었다.
또한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불․보살님의 입상이 보이면 감
히 앉지 않았다.채소나 과일이라도 무슨 고기 무슨 생선의 이름
자가 들어간 것이면 먹지 않았으니,마음을 조심하여 잘못을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