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2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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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선림보훈 하



            ‘…여기가 바로 선불장일세’라는 구절에 이르자,차암스님이 대뜸
            할(喝)을 하였다.

               혹암스님은 여기서 크게 깨닫고 이 과거장 상황에 제격일 듯
            한 게송을 지었다.



                 헤아리길 다한 곳에 제목[試題]을 보고
                 길이 끝나는 데서 시험장에 들었네
                 붓끝을 들자마자 장황한 글 쏟아내니
                 이번에는 3등짜리 급제자[探花郞]는 되지 않으리

                 商量極處見題目 途路窮邊入試場
                 拈起毫端風雨快 遮回不作探花郞


               이로부터 자취를 천태산에 숨기고 살았다.승상 전공(錢公)은
            그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천봉사(天封寺)를 맡아 세간에 응해 주기

            를 권하였다.혹암스님이 듣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짓은 알지 못한
            다.”

               그리고는 그날 밤으로 도망을 가 버렸다.


                 2.

               건도(乾道)초년(1165)에 할당(瞎堂)스님이 국청사(國淸寺)에 머
            무르고 있었다.이때 혹암스님이 관음상[圓通像]을 보면서 찬(贊)
            을 한 수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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