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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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주승사가 도착하자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인사하였다.이어서 그를 앉으라고 한 다음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세상사에 막힘 없고 사리를 아는 사람이라 여겨
            왔었는데 뜻밖에도 요사이에 보니,그대 또한 똑같이 못난 사람이로

            군! 능엄경 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글이기에 그렇게 탐착하는가.
            성인의 깊은 말씀 치고 공자 맹자보다도 더 훌륭한 말이 없는데 이
            것을 버리고 그것을 택한다는 것은 큰 잘못일세.”

               “ 상공께서는 이 경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공맹보다 못하
            다고 생각하십니까?제가 보기로는 오히려 공맹보다 더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수능엄경  첫 권을 내놓으면서 말하였다.
               “상공께서도 한번 읽어보시지요.”
               두기공은 주승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지못하여 책을 집어

            들고 말없이 책장을 뒤적이다가 자기도 모르게 끝까지 다 읽고 갑
            자기 일어서며 매우 놀라 감탄하였다.
               “세상 어디에 이런 책이 있었단 말인가!”

               사람을 보내 나머지 부분을 모두 가져오게 하여 다 읽어본 후
            주승사의 손을 붙잡고 고마워하였다.
               “그대가 참으로 나의 선지식일세.안도(문정공)는 오래 전부터 알

            고 있으면서도 왜 진작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곧장 가마를 준비케 하여 문정공을 찾아가 그 일을 말
            하자,문정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생각지 않게 찾았을 때 찾은
            것만을 기뻐할 일이지,일찍 찾았느냐 늦게 찾았느냐를 따질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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