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선림고경총서 - 08 - 임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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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간록 하 21
없다.내가 그대에게 말해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대와 주
군(朱君)의 인연이 더 깊기에 그를 보낸 것이다.부처님일지라도 사
람을 교화하는 데에는 반드시 동사섭(同事攝)하는 자의 힘을 빌려
법을 전하셨을 것이다.”
두기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3.대중 뒷바라지를 잘한 주지/중선(重善)스님
형주(荊州)복창사(福昌寺)의 중선(重善)스님은 명교 사관(明敎師
寬:운문종)스님의 법제자로 사람됨이 공손하고 근엄하며,불법을
중히 여겼다.
처음 주지가 되었을 때는 십여 간 요사채에 서너 명의 승려가
있었을 뿐 적막하기 그지없었다.스님은 새벽에 향을 사르고 저녁에
등불을 밝히며 법당에 올라 설법하되 마치 수천 명의 대중을 앞에
둔 듯하였으며,총림에 필요한 물건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은 모두 갖
추어 놓았고,지나는 길손이 찾아오면 묵묵히 극진히 대해 주었다.
이러기를 10여 년 만에 비로소 납자들이 모여들게 되었고,온 천하
에서 스님의 풍모(風貌)를 바라보고 길이 추앙하게 되었다.
혜남(慧南)스님과 문열(文悅)스님 또한 그의 회하에 있었는데,혜
남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때 감기가 들어 약을 먹고 이불을 덮어쓰고 땀을 내야
만 하겠기에 문열스님을 보내어 온 절 대중에게 이불을 빌려 보려
하였지만 이불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백여 명의 대중들은 한결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