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9 - 선림고경총서 - 16 - 운문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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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下 179
스님께서 임금께 남긴 글[大師遺表]
엎드려 아뢰옵니다.유한한 색신이 어떻게 흥망성쇠의 한탄을
면할 것이며,모습 없는 실상에 누가 흘러가는 세월이 있다고 하
겠습니까.이미 바람 앞의 등불이요 타오르는 횃불이라 세상에 머
무르기는 어렵고,물속에 비친 달 허공에 핀 꽃이라 어디로 갈 곳
이 없습니다.법도대로 살아감에 허물을 피할 길 없어 육신의 껍
질을 벗어버리는 말을 드릴까 하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돌이켜보면 저는 원래 보잘것없는 사
람이었습니다.거적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벌써 불교[空門]를 매
우 흠모하였습니다.그리하여 간절한 서원을 청정히 세워 다른 일
을 다 그만두고 불교경전을 탐구하는 데만 마음을 온통 기울였습
니다.어떤 때는 밥 먹는 것마저 잊은 채 마주하여 법을 물었고,
눈 속에 서서 알기를 구하기도 하였습니다.그렇게 17년 세월을
모진 풍상에 시달리며 수천 리 넘는 길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서
야 비로소 원숭이같이 날뛰던 마음이 쉬고 말같이 치달리던 생각
이 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