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6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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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설봉록


            한다.이 분들은 모두가 문도를 모아 무리를 이루고 문호를 열어 가
            문의 이름을 지어 놓고 말씀과 글을 통해 뒷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스승을 따라 수행하는 어려움,도를 봄이 더딤에도
            부지런히 반복하며 쉬지 않고 애쓰다가 끝내 크게 성취한 분을 고찰

            해 본다면,나는 그러한 경우를 설봉대사에서 보았다.
               그 분은 만년에 스스로 심산유곡 깎아지른 바위와 황량한 절벽
            밑,사람의 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몸을 버리고 들짐승과 노
            닐면서 풀을 깎아 암자를 세워 비바람을 막고 살았다.학인들이 그
            곳으로 달려가 5백 명이나 되었고,집채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즐비
            하게 이어졌다.긴 숲이 하늘에 닿고 곡식더미가 구름같이 쌓여 그

            길이가 몇백 리에 달하였으니,이곳에 몸을 기대 사는 사람은 모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아마도 달마스님이 동
            쪽에 오고 육조스님이 남쪽으로 오신 뒤로 선림이 이와 같이 성대했
            던 적이 일찍이 없을 것이다.

               나는 복주(福州)에 온 지 2년이 되도록 아직 그 산에 가서 그 분
            의 탑을 한번 우러러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그래서 그 분의 진
            영을 가져다가 성에 들어가 절을 올렸다.그 진영은 네 폭이었는데
            설봉대사가 한가운데 반듯이 앉아 있었고 양옆에 모시고 선 분들은
            운문 문언,현사 사비 등 모두 열두 분이었다.
               나는 그 그림을 전해 받고 나서 그곳의 학인 같아 보이는 스님에

            게 그 분이 산중에서 했던 선법어를 모조리 찾아보게 하였다.그러
            나 이리저리 흩어지고 겨우 남아 있는 것도 고증할 수가 없었으며,
            왕문혜공(王文惠公)이 지은 어록의 서문만이 돌에 새겨 있을 뿐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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