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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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거짓된 설을 가려낼 수 있었는데,어찌 자신의 10세조에 대해서
스스로 알지 못하여 굳이 후대의 학인들을 번거롭게 했겠습니까?이
렇게 명백한 것을 버리고 헷갈리는 것을 가르치며 사람들을 끌고 가
서 당나귀 안장 옆에서 자기 아버지의 턱을 찾게 하고 있으니,이런
사람을 두고 흔히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괴상하고 우스운 일은 옛사람이 고증해서 주를 지었는데도
빠지고 의심나는 내용이 남아 있는지 지금에 와서 고집스럽게 위비
(僞碑)만을 믿고 멋대로 용장(龍藏:龍圖閣의 藏書)을 고치려 하는 것
입니다.그 분수를 모르고 허황한 거짓의 구별 없음이 어찌 여기까
지 이르렀습니까.
그래서 저는 편치 않은 가슴을 안고 있던 차에 우연히 시비를 가
려내 주신 법형의 훌륭한 말씀을 만나게 되자 저도 모르게 칼을 빼
들고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이야말로 이른바 “도를 위함이지 이름
을 위함이 아니며,법을 위함이지 내 몸을 위함이 아니다”라고 한 것
입니다.또한 이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로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가까운 횡산(橫山)에 있는데도 법형의 근황이 어떤지도
모르고,또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할말 다하지 못합니다.
【부치는 글】
종풍에서는 의발을 창도하여 신표로 삼기도 하는데,5조까지는
방계와 정통의 구분이 있었기에 의발이 필요했다.그러나 6조에 와
서 그 법도가 널리 퍼짐에 따라 의발의 전수도 그치게 되니 바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