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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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록 上 41
남의 집안일이라면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은 옆집에 앉아 나의 눈
물과 침이나 받아먹는 꼴이다.이렇게 마음[意識]속에서 알음알이를
짓다가 어떤 사람이 불쑥 자기 집안일을 물어 오면 엇비슷한 말로
대답하고,그러다가 눈 밝은 사람에게 한번에 깨지고는 그곳에서 도
망갈 수도 없게 된다.이렇듯 까맣고 질펀한 칠통 같은 신세가 된 것
은 이제까지의 행각에서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롭고 굴욕스러운 일은 그 처음에 있다’고 하는 것이
다.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너희들과 닮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띠끌 겁 전부터 내려온 그대
들의 일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여기에서 실오라기 하나 머리털 하
나만큼이라도 자리를 옮기려 한다면 곧 목숨을 잃는 자가 될 것이다.
만약에 한 글자라도 받아 지닌다면 그 사람은 영겁토록 여우의 혼령
에 지나지 않는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내가 이 개구리 같은 입을 벌려 지껄이기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알겠느냐!”
3.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조계산(曹谿山)의 한 길은 온 나라사람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마
는 설봉산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의사의 문하에는 병귀(病鬼)가 많다.”
한 스님이 물었다.
“고금에 서로 전해 온 일에 무슨 할말이 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