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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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설봉록
“분수에 따라 뵙는 것은 무방하다.”
“ 뵙고 나서는 어떻게 합니까?”
“ 외벌[胡蜂]은 옛 집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이어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이렇게 이곳에 와서 모두 나를 친견하겠다고들 하지만,
그래 어떻게 친견하겠다는 말인가?친견하려 하면 벌써 멀어지는 것
이다.”
한 스님이 이때 질문을 하려는데 스님께서 갑자기 불자로 그의
입을 때리며 “알겠느냐?”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어떤 것과도 이웃이 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 너의 귀가 시끄러울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입을 아끼지 마시고 문답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위기를 만나면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는 풀 속에 있는 사람들이고,10경(十經)과 5론(五
論)이란 당나귀를 매어 두는 말뚝과 같은 것이다.또한 화엄경 80
권은 쑥대머리로 주먹밥을 먹으면서 한 말이며,12분교란 개구리의
입 속에서 나온 말이다.알겠느냐?그러므로 말하노니,지금 여기 백
천 명 가운데 나를 기꺼이 당나귀나 낙타 같은 동물이 되게 할 사람
이 있다면 내가 그에게 공양을 올린다 해서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