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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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록 下 175


               “저의 허물을 봐 주신다면 말할 것이 있습니다.”
               “ 그대의 허물을 봐 주겠다.어떻게 말하겠는가?”
               장생스님이 한참을 잠자코 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더러 알게 하겠는가?”
               “ 귀를 기울여 봤자 헛수고입니다.”
               “ 그대가 귀신의 굴속에서 살 궁리나 하고 있는 놈이라는 사실

            을 알겠구나.”


               스님께서 설봉에 있을 때 설봉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말하기를,‘빛도 그림자도 없으니 도대체 어떤 물건
            인가[光景俱亡復是何物]’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스님에게 되물으셨다.

               “그대는 여기에다 어떤 말을 붙여야 합당하겠는가?”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저의 허물을 봐주신다면 말할 것이 있겠습니다.”

               “ 그대의 허물을 봐주겠다.어떻게 말하겠는가?”
               “ 저도 스님의 허물을 봐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밀사백(密師伯)이 토끼를 본 일[見免話]*에서 동산(洞
                                                            5)
            山)스님이 ‘대대로 벼슬하다가 잠시 벼슬을 그만두었다’한 말씀을

            거론하시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洞山)스님이 밀사백(密師伯:승밀)과 길을 가는데 흰 토끼가 눈앞을 달
              려 지나갔다.그것을 보고 밀사백이 말하였다.“날쌔구나!”“뭐가 말이오?”
              “ 마치 백의(白衣:평민)로 재상 자리에 임명된 것 같소이다.”“굉장한 분이
              무슨 그런 말씀을!”“그러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여러 대의 높은 벼슬이
              잠시 벼슬길에서 물러났소.”원문의 ‘免’은 ‘兎’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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