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5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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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록 下 235


            고,스승과 제자 사이의 효행이 더욱 뚜렷하였다.그 후 늘 큰 비
            석 세울 일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으나 아직 큰 돌을 자르지 못한
            채 장흥(長興)초 경인년(930)이 되었다.가만히 생각하니 건안부

            (建安府)의 상국 시중인 왕공(王公)은 젊은 나이에 몇 차례나 오랑
            캐를 정벌하였으며,또 여러 번 선방을 찾아왔고,크고 작은 일을
            모두 왕에게 보고하는 사람이다.엎드려 생각하니 왕공이 높이 이

            러한 좋은 일을 나타내 큰 묘성(昴星)이 상서로운 기운을 드러내
            니,5천리 산하가 진실로 패도에 돌아가고 12국의 창업이 그의 큰
            계획에 비할 바 없었다.아울러 그는,도리로는 현묘한 기틀을 통

            달했고 마음으로 부처님의 경전을 숭상하는 사람이다.그래서 이
            기연을 생각하여 편지를 보냈더니 과연 흘려주신 은혜를 입게 되
            어 용화담(龍化潭)의 땅 속에서 비석돌이 나왔다.만약 우리 대사

            가 뿌린 향기 짙은 도의 열매와 우리 시중이 드리운 시종 변함없
            는 정성이 아니었던들 어찌 절묘한 글을 얻어 비산(飛山)의 터에
            세울 수 있었겠는가?

               나 임징(林澂)은 비록 몸소 글방에서 널리 문장을 익혔으나 우
            리 유가의 문장에는 툭 트인 맛이 없다는 점을 늘 부끄럽게 생각
            해 왔는데,승통 통혜(通惠)대사와 영공(靈公)께서 나를 자주 법회
            에 참여하게 하여 조금씩 현묘한 도리와 가까워졌다.또 소상하게

            밟아 온 규범을 익혔기에 융숭한 덕을 기록할 만하였다.임금님이
            대신들의 말씀을 듣고 굳이 이 못난 사람에게 글을 지으라 명하니

            한사코 사양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여 글을 짓게 되었음을 참
            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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