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1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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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록 下 231
다.그러나 왕이 허락하지 않자 문도들이 찾아와 문안드리고 스님
의 거취를 물어보면서,그대로 따르는 것이 조정의 정세에도 맞고
사람들의 소원도 저버리지 않는 길이라고 간언하였다.
그 해 가을,제자 학인들이 구름 모이듯 별이 달리듯 옹호하며
웅장한 궁궐의 뜰에 가서 함께 영명(英明)한 왕의 처소에 이르니
구경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우러러보니 하늘에는 가던 구름
도 멈추고,사람들은 착한 싹을 틔우며,땅은 기쁨으로 가득하였
다.충의왕은 스님의 모습을 멀리 우러러보고 마음을 기울여 귀의
하였다.출세간의 스승으로 예우하고 하생하신 부처님이라 공경하
여 국고에서 2천 석의 두둑한 녹봉과 1만 전(錢)의 상포(常庖:常
用物品費)를 내렸다.거기다가 화려한 법당을 열고 넓은 불전을 베
푸니 서까래에 별이 총총히 모여들고 마루 창문에는 노을이 자욱
하였다.가로 걸친 대들보는 속세의 먼지를 떠난 무지개 같았고
포개진 기왓장은 아득한 하늘에 날아오를 듯한 원앙새 같았다.
1 년이 채 안 되어서 승복 입은 스님들이 다투어 방장실에 모여
들어 아침저녁 스님을 에워쌌다.7백여 명의 학인 가운데 혜구(惠
球)장로와 계침(桂琛)장로가 있었는데,그들은 함께 진정한 도덕의
샘에서 목욕하고 법의 정원에 몸을 깃들여 독보적으로 봉황 깃털
의 상서를 나타내고 먼저 기린(麒麟)뿔의 보배가 되었다.그 후
왕의 은혜에 보답하여 종문의 가르침을 선양하였는데,스님의 말
씀은 깊은 숲같이 그윽하였고 글은 넓은 바다같이 아득히 넘실거
렸다.
웅대한 뜻이 있었기에 날뛰는 벼슬아치에게 짐짓 몸을 낮추었
고,뛰어난 말솜씨가 있었기에 무거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