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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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를 개척했는데,그 사이 밥 먹을 여가마저 없었으나 저녁이
되어도 고단하다 하지 않았다.
이때 설봉스님이 다시 물었다.
“여러 성인의 자취를 돌아보고 종풍을 같이하는 스님들을 찾아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이조는 서천에 가지 않았고 달마는 이 땅에 오지 않았습니다.”
설봉스님은 스님의 지극한 덕을 높이 샀고 스님의 말을 인정했
다.
그러나 날카로운 송곳이 어찌 주머니 안에 감춰지겠으며 빛나
는 큰 구슬이 어찌 옥석에 묻혀 있겠는가.스님은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석장을 걸머진 채 들판에 묵으며 구름 속에 잠자다가,어느
날 민(閩)지방의 청현(淸縣)경계에 이르렀다.여기서 처음에는 보
응산(普應山)에 띠집을 짓고 살다가 다음에 현사사(玄沙寺)보봉원
(寶峰院)에 주지하였다.소나무,대나무를 심어 지조를 나타내고 흙
과 나무를 나르면서 몸을 고달프게 하였는데,도는 그 속에 있었
으나 소문은 밖에까지 알려졌다.
광화(光化:898~900)연간 초에 오(吳)의 충의왕(忠懿王)이 무
력으로 나라를 평정하여 공이 이루어지자 3교(三敎)가 나란히 행해
지니 온 나라가 거울같이 탁 트였다.충의왕은 아지랑이와 수풀
덩굴 우거진 신선세계에 멀리 글을 띄워 스님께 관부로 내려와 안
국선원(安國禪院)에 주지를 맡아 달라고 청하였다.스님은 왕이 내
린 밀지(密旨)를 보고 웃으며 목석을 가리키며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높이 세상 밖에 숨으려는 뜻이 더욱 굳어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