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2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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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히 웃어 주었으며,모든 외도들을 꺾고 저 3승을 뛰어넘었다.그
리하여 꽃다운 이름이 팔방에 솟아 만방에서 찾아와 존경하였으
니,기러기 소식이 막힌 북방에 창을 등에 진 선비들은 남쪽으로
오리떼처럼 이끌려 왔고 솜옷을 껴안고 있던 계림(雞林)의 무리들
은 학처럼 길게 목을 뽑아내 서쪽을 바라보았다.
충의왕은 산처럼 두텁게 신임하였고 왕족보다 후하게 예우하였
다.왕은 이윽고 글을 보내니 천자가 듣고 거룩하신 뜻으로 종일
선사(宗一禪師)라는 호와 가사를 내렸다.비단 편지에 깔려 있는
아름다운 문장은 더욱 새롭고 황제의 은택이 찬란한,짙은 자색
옷에 박힌 금실에는 아직도 하늘 향내가 흩어지지 않았으니 이는
총림을 환히 빛내고 백성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이슬 같고 비 같은 은혜를 받고서도 끝내 구름
과 샘물을 좋아하고 번화함을 싫어하여 그윽하고 적막한 곳에 마
음을 두었으니,마치 등불이 사물에 부딪치면 사물이 스스로 등
앞에 드러나듯,여럿으로 나뉘어 비치는 달이 사실은 여럿일 수
없듯 하였다.
스님의 말씀은 듣기에는 쓰지만 이치에는 맞았고 스님의 덕은
준엄했으나 정신은 자비로웠다.또한 검약도 버리고 사치도 버려
한쪽으로 기울거나 무리 짓지 않았으며,비단옷을 굵은 삼베옷보
다 천하게 여기고 금과 옥을 흙과 모래에 비유하였으니 아라한의
마음을 뛰어넘고 보살의 행을 넘어섰다.
석실에 살게 된 이후에 새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찾아왔으며,
법제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서로 기질들이 달라서 원만히
깨달으신 스님만은 못했다.벌려 놓은 일은 안 되는 것이 없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