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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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병진 4월 8일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향을 사러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불
자를 세우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집안의 이 물건은 신기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으며 머리
도 없고 꼬리도 없되,해같이 밝고 옻같이 검다.항상 여러분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으나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산승이 오늘 무심코 그것을 붙잡아 여러분 앞에 꺼내 보
이니,여러분은 이것을 아는가?안다 해도 둔근기인데 여기다 망
설이기까지 한다면 나귀해[驢年]에 꿈에서나 볼 것이다.그러므로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하는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요,경론을 말해 주는 것도 눈 안에 금가루를 넣는 것이다.
산승은 오늘 말할 선도 없고 전할 교도 없소.다만 3세의 부처
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도 전하지 못했으며,천하의 큰
스님들도 뚫지 못한 것을 오늘 한꺼번에 집어 보이는 것이다.”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당장에 마음을 비울 뿐만 아니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