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7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P. 187

게 송 187


               흰구름 쌓인 속에 세 칸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스스로 한가하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갑네.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헛된 명예 끊었고
               돌병풍을 의지하여 세상 인정 버렸다
               꽃과 잎은 뜰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때때로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들리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오는 사람은 없고

               혼자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었노라
               석 자 되는 사립문을 반쯤 밀어 닫아 두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한가로이 지내노라.


               나는 산에 살고부터 산이 싫지 않나니

               가시 사립과 띠풀 집이 세상살이와 다르다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추녀 끝에 떨치는데

               시냇물은 가슴을 뚫고 서늘하게 담(膽)을 씻어내는구나.


               일없이 걸어나가 시냇가에 다다르면

               차갑게 흐르는 물 홀로 선정을 연설하네
               물건마다 인연마다 진체(眞體)를 나타내니
               공겁(空劫)이 생기기 전의 일을 말해서 무엇 하리.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191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