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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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나옹록
17.나라에서 주관한 수륙재(水陸齋)에서
육도중생에게 설하다
스님께서 자리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승의공주(承懿公主:공민왕비 노국대공주를 말함)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여기서 당장 빛을 돌이켜 한번 보시오.지
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을 묻지 않고도 본지풍광(本
地風光)을 밟을 수 있다.그렇지 못하면 잔소리를 한마디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승의공주여,36년 전에도 이것은 난 적이 없었으나 과거의 선
인(善因)으로 인간세계에 노닐면서 만백성의 자모(慈母)가 되어 온
갖 덕을 베풀다가,조그만 묵은 빚으로 고요히 몸을 바꿨소.그러
나 36년 후에도 이것은 죽지 않았으니,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나
생애(生涯)를 따로 세웠소.
승의공주여,4대가 생길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
을 따라 생기지 않았고,4대가 무너질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무너지지 않소.나고 죽음과 생기고 무너짐은
헛꽃 같으니,원수니 친한 이니 하는 묵은 업이 지금 어디 있겠소.
이제 이미 없어졌으매 찾아도 자취가 없어 드디어 허공같이 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