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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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上 21
노경에 이르러 제일의제를 들을 수 있었다는 일을 스스로에게 빗
댄 것이 어찌 사람을 속이는 말이겠는가.
2.조수 자지(祖秀紫芝)스님의 문장
촉승(蜀僧)조수(祖秀)는 자가 자지(紫芝)이며 일찍이 문장으로
사대부 사이에 명성을 날렸고 숭 명교(契崇明敎)선사의 도풍을 추
앙하였다.그는 구양문충공외전(歐陽文忠公(歐陽修)外傳)을 저술
하였는데 양직 소상(養直蘇庠)이 책머리에 서문을 썼다.서문은 대
략 다음과 같다.
군자들은,불교가 요․순․우․탕의 시대에는 뚜렷한 징후가
없었지만 공자 맹자 이후의 역대 선유(先儒)들이 국정을 담당하
면서 조금치도 금하지 않았으며 국내에 횡행하는 것을 방관하였
다고 말한다.고금에 이러한 지론을 가지는 자가 없지 않았으나
조수스님만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요임금은 단주(丹朱:요의 아들)에게 국정을 맡을 자격이 없
다고 순임금에게 양위하였고,순 또한 아들 상균(商均)을 걱정하
여 우(禹)에게 양위하였다.탕과 무왕의 혁명에 이르러 이 가르
침이 처음 생겨났으니 공자로 하여금 일을 처리하게끔 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요임금에서 무왕까지 부처님이 탄생하지
않았음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성왕(成王:周代의 임금)강왕
(康王)이 죽은 뒤에 부처님이 자취를 나타내셨다.그러나 그 가
르침이 중국에 전해지지 않고 성인이 노나라에 태어나 옛 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