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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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上 23


                 선생은 더욱 문장으로 그들을 풍자하였고
                 바다 밖으로 귀양살이를 떠나면서도
                 고향에 돌아가듯 태연하였다
                 참으로 촉군의 다섯 호걸은

                 선생의 담장을 엿보지도 못할 것이다.
                 漢之司馬楊王 唐之太白子昻

                 是五君子者皆生乎蜀郡 未若夫子而有耿光

                 夫子之詩抗衡者其唯子美 夫子之文並軫者其唯子長
                 賦亦賢於屈賈 字乃健於鍾王
                 此夫子之絶技 蓋至道之秕穅
                 夫子之道是爲后稷伊尹 可以致其君於堯湯

                 時議將加之於鈇鉞 而夫子尤諷於典章
                 海表之遷 如還故鄕

                 信蜀郡之五傑者 莫得窺夫子之垣墻


               조수스님의 논지와 풍모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한 점
            의 고기를 맛보면 그 솥 속의 음식 맛을 알 수 있다.정강(靖康:

            1126)초에 조수스님은 서울에 머무르면서                   화양궁기(華陽宮記)
            를 지었는데 매우 자세히 썼고,그의                   동도사략(東都事略)에는

            주면(朱勔)이 전한 찬(讚)이 붙어 있다.주면은 동도 땅 공사를 감
            독하면서 이를 읽은 자이다.이른바 ‘수산 간악(壽山艮嶽)을 보는
            듯 훤하니’어찌 꼭 보아야만 알겠는가.

               승상(丞相)장덕원(張德遠)이 복당(福唐)판윤(判尹)으로 있을 무
            렵 조수스님을 장락(長樂)광엄사(光嚴寺)의 주지로 청했다.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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