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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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上 21
그로부터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兎]무리들
이 앞을 다투어 ‘말없이 절하고 제자리에 선 것’을,골수를 얻은
심오한 이치라고 여기게 되었으나 그들은 칼 잃은 자리를 뱃전에
새겨 놓고 나중에 칼을 찾는 격[刻舟求劍]이 되었음을 전혀 몰랐
다 하리라.이런 자들이야말로 칼 잃은 자리를 배에다 새기는 자
들이니 꿈엔들 달마스님을 뵐 수 있겠는가.
진정한 본색도류(本色道流)라면 반드시 정견(情見)을 벗어나서
별도의 생애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니,결코 썩은 물속에서 살아날
계책을 짓지 말아야 한다.그래야만 비로소 이 집안의 가업을 계
승하리라.여기에 이르러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이 있다는 사
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이른바 유하혜(柳下惠)*의 일을 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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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결코 그의 자취를 본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이 때문에 옛사
람은 말하기를,“한마디 합당한 말은 만 겁에 노새 매는 말뚝이라
네”라고 하였는데,참으로 옳다 하겠다.
유(有)를 타파한 법왕(法王: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셔서 중생의
욕구에 따라 갖가지로 법을 설하시나,그 설법은 모두 방편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그것은 다만 집착과 의심을 부수고 알음알이
와 아견(我見)을 부숴 주기 위해서이니,그 많은 악각악견(惡覺惡
見)이 없다면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지도 않을 터인데,하물며
갖가지 법을 설할 까닭이 있겠는가.
옛사람은 종지를 체득한 뒤에는 깊은 산 초막이나 돌집 속에서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해 먹으며 10년이고 20년이고 지냈다.그
*유하혜(柳下惠):장문중(藏文仲)이 유하혜가 어진 줄 알면서도 그를 조정에 천거
하지 않았던 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