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선림고경총서 - 30 - 원오심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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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심요 上 25


            이런 사람이야말로 도량을 헤아릴 수 없는 큰 인물이라 하겠으니,
            병을 많이 앓아 보아야 약의 성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 기틀[心機]을 모두 끊어 버려 비춤의 체[照
            體]도 이미 잊었다.그런가 하면 알음알이도 전혀 없고 그저 무심
            한 경지만 지킬 뿐이어서 하늘 사람이 그에게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 외도가 가만히 엿보려 해도 보지 못한다.
               깊고 깊은 바다 밑을 가고,번뇌가 다하여 뜻으로 헤아리고 하
            는 일마다가 모두 평상심(平常心)이어서 한가한 시골에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당장에 모든 생각을 놓아버려 성태를 길러서 이런
            경지가 되어도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털끝만큼이라도 무언
            가 있기만 하면 태산이 사람을 가로막는 것처럼 여겨서 바로 털

            어 버린다.비록 이렇게 하는 것이 순일한 이치이긴 하나 취할 만
            한 것이 없으니,취했다 하면 바로 ‘견해의 가시’가 되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도는 무심히 사람에게 합하고,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고 하였으니,스스로 나는 체득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려 해

            서야 되겠는가.
               살펴보건대,본분종사들은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으려

            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스님을 ‘배울 것이 끊겨 함이 없는,옛사람
            과 짝이 될 만한 참 도인’이라 부르게 된다.
               덕산스님이 하루는 공양시간이 늦었는데 발우를 들고 방장실에

            서 내려오자 설봉(雪峰)스님이 말하였다.
               “종도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
            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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