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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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15
















            나타낼 수 있으리오.설두스님과 원오스님이 노파심이 깊으셨으나,대혜

            스님께서는 ( 벽암록 을)불살라 버렸다.그 후 우중 땅에 사는 장위(張
            煒:字는 明遠)가 그 타고 남은 재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목판을 다시
            깎아 세상에 유포시키니 이것도 역시 노파심이 간절한 것이 아니겠는가!


               대덕(大德)4년 경자(庚子,1300년)4월 초파일 계축(癸丑),
               자양산(紫陽山)에 사는 방회(方回:字는 萬里)는 서를 쓰다.




               삼교노인의 서



               어떤 이는 묻기를 “벽암집 을 만든 원오스님과 그것을 태운 대혜스
            님 중에 누가 옳은가?”라고 한다면,나는 “둘 다 옳다”고 대답할 것이다.
            뻐드렁니에 충치투성이(달마스님을 지칭)가 중국에 와서 오직 마음만을
            전하고 문자를 운운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그러나  혈맥론


            (血脈論), 귀공론(歸空論) 등의 여러 글은 과연 누구를 위해 지은 것
            이겠는가?옛사람들이 “문자와 관계가 없으나 그렇다고 문자와 무관하지
            도 않다”고 했으니,이는 참으로 말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수행
            자들마다 제각기 ‘주련을 걷어올리기’도 하고,‘선판을 두들기기’도 하고,
            ‘손가락을 세우기’도 하고,‘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던 차에,생사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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