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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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했다.어디 문자 따위가 있었느냐?‘염화미소’의 사건이 있고,다음
에 ‘대문에 있는 장대를 자빠뜨리라는 말씀’이 있고 나서 조금씩 언어문
자를 사용하게 되었다.문자가 아니면 전달할 수 없기에 역시 이 문자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찍이 조사스님네들의 가르침을 적은 책을 공안(公案)이라 불렀는데,
이는 당나라 때에 생겨 송대에 성행하게 되었다.그 유래는 참으로 대단
하다.이 ‘공안’이라는 두 글자는 세속에서 말하는 이른바 관리들의 문서
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 가지 역할이 있다.
면벽 참선을 오래 하고 행각을 끝냈더라도 저울 눈금(참된 깨달음을
판단하는 일)을 밝히기 어렵고 오히려 잘못된 선에 떨어지기 쉽다.그것
을 가릴 만한 눈을 갖춘 어른들이 그것을 판별해 주시느라 꾸짖기도 하
고 소리지르기도 하여 참된 의미를 깨치도록 하였으니,이것은 마치 노
련한 관리가 잘못에 의해 죄를 다스리고 그 실상을 속속들이 알고 사건
의 진상을 남김없이 밝혀 내는 것과 같다.바로 이것이 첫 번째의 역할
이다.
다음은 육조스님께서 영남 지방에 오신 이래로 (마조스님은 서강의
물을 다 마셔야만 만법에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답해 주겠다
하였으나)서강의 물을 마시지 못했고,도망간 양을 찾으려고 길을 나섰
으나 갈림길이 너무 많아 그만 울고 돌아왔지만,지남철은 언제나 남쪽
을 가리킨다.자비심으로 이끌어 주시고자 한 대 때리기도 하고 상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