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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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도 하여 스스로 깨치도록 하셨네.이것은 마치 재판관이 법에 의거

            하여 무죄임을 밝혀 죽음에서 구해 주는 것과 같으니,이것이 두 번째의
            역할이다.
               다음은 다른 길로 빠질까 염려하여 더욱 고삐를 거머쥐시는 것이다.
            하잘것없는 일일지라도 전력을 다해야 하며,흰 바탕에는 잡된 물이 들
            기 쉽기 때문에 늘 그것을 가엾게 여기셨다.대선지식께서 이를 간절히
            일러주시고 죽자사자 참선하게 하시니,하시는 일마다 모두가 마치 관청
            에서 법령을 공포하여 백성들이 이 법을 잘 알고 지켜서 못된 생각이 조
            그만치라도 생기자마자 당장에 쏙 들어가게 하는 것과 같다.이것이 세
            번째의 역할이다.
               기록들을 모아 공안집을 만들어 깨닫게 된 기연과 경지를 늘어놓아
            모범이 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마치 세간의 금과옥조(훌륭한 법조

            문)․청명대월(훌륭한 판례집)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그러므로 조사스
            님께서 공안을 세우고 총림에 간직하게 한 것은 그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이것이야말로 말법이 횡행하는 때에 나타나는 징조로,오묘
            한 마음의 법을 ‘고름 묻은 창호지(경전)’에서 구하고,정법을 언어로 전
            하고,이미 돌아가신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낱낱이 기록하여 장부에 올려
            두는 것이 아니고 뭣이냐!이는 남의 가문에 의존하여 멋대로 양반 행세
            하는 꼴이다.이는 또 ‘각주구검’이며 ‘수주대토’와 같아 뱃속 가득히 언
            어문자를 채우고 이리저리 질문을 퍼내지만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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