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1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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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271
이라면 반드시 구절 속에 기연을 드러내고 말 가운데에서 핵심
을 알아야 한다.판때기를 짊어진 자[擔板漢:외통수]들은 흔히
언구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목구멍과 입을 벌리지 않으니
다시는 입을 뗄 곳이 없다”고 말한다.이에 변통할 줄 아는 자
라면 역공격할 줄 아는 기상이 있다.그러므로 물음 속에 한 가
닥 길이 있어서 칼끝도 상하지 않고 손도 다치지 않는다.
위산스님이 “스님께서 말씀해 보시지요”라고 말하였는데,말
해 보라,그의 뜻은 무엇인가를.여기에 번뜩이는 전광석화처럼
그(백장스님)를 내질렀다.묻자마자 바로 답하여 빠져나갈 길이
있어,한 오라기의 힘도 쓰지 않았다.그러므로 “그는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백장스님은
문득 그를 그냥 두지 않고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 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하였을 뿐이
다.
대체로 종사가 사람을 지도하는 것은 못과 쐐기를 뽑아 주는
것인데,요즈음 사람들은 “이 답변은 그(위산스님)가 말뜻을 깨
닫지 못해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고들 말한다.그러나 이는
(백장스님의)말속에 하나의 쌩쌩한 기연이 있어 천 길 벼랑처
럼 우뚝하고,빈(賓)․주(主)가 서로 교환하여 팔팔한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의 말이 풍류도 있고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완연히 자재하며,또한 (적이 지나는)통로를 꽉 거머쥐
고 있음을 좋아한 까닭에 다음과 같이 송을 한 것이다.
송
스님이 말해 보시오.
-하늘과 땅을 덮어 버렸다.벌써 칼끝을 상하고 손을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