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7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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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267
었다.마침내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활 잘 쏘는 사람을)묻자
많은 신하들이 “유기가 활을 잘 쏜다”고 아뢰어 드디어 그에게
활을 쏘게 하였다.유기가 활을 당기려 하자 원숭이는 나무를
껴안고 슬피 울부짖었으며,화살을 쏠 즈음에 이르자 나무를 끼
고 돌면서 피하였으나,화살도 나무를 끼고 돌면서 원숭이를 적
중시켰다.이는 귀신같은 활잡이[神箭]였다.
그런데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왜 그리도 곧은지”라고 말
하였을까?완전히 곧았더라면 적중하지 못했을 것이다.화살은
빙글빙글 나무를 끼고 돌았는데,무엇 때문에 “왜 그리도 곧은
지”라고 말하였을까?설두스님은 비유를 참으로 잘하였다.이
일은 춘추전(春秋傳) 에 나온다.어느 사람은 “나무를 끼고 돈
것이 일원상(一圓相)이다”고 말하니,참으로 이와 같다면 말의
종지를 알지 못하였고,완전히 곧은 곳도 모른 것이다.세 늙은
이는 길은 달랐으나 귀결점은 같았으며,한 가지 법도로 일제히
크게 곧았었다.
그들이 갔던 곳을 알면 종횡무진하면서도 마음을 떠나지 않
고 마치 모든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듯하리라.그러므로 남
전스님이 “그렇다면 떠나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납승이 바른 눈[正眼]으로 엿본다면 이는 망상분별일 뿐이다.
따라서 만약 그것을 망상분별이라 말한다면 이야말로 망상분별
이 아니다.나의 스승 오조(五祖)스님께서는 “그들 세 사람은
혜거삼매(慧炬三昧)였으며 장엄왕삼매(莊嚴王三昧)였다”고 하셨
다.
그러나 여인처럼 절을 하는 시늉을 했으나 끝내 여인의 절로
알지 않았으며,원상을 그렸으나 원상으로 알지 않았다.이미
이처럼 알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알아야 할까?설두스님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