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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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쉬운 문제조차 어렵게 푸는 ‘교수의 악습’ 때문이라면 해결할 길

            이 없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시
            비是非와 선악善惡과 미추美醜를 나누는 삶의 방식과 내용 자체가 선문

            의 길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역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여정입니다.

               그런데 알고 이해하는 일 자체가 깨달음의 장애가 됨을 알면서도 다
            시 그 앎과 이해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선적禪的 담론의 운명이기

            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철선에 대해 말하기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와 실상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운명적 간극을 거듭

            확인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진실로 알고자 하는 간절함의 순도가 높아집
            니다. 그리하여 이 책이 성철선에 대한 이해를 넘어 성철선을 실천하는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읽기는 수시로 멈춰야 하고 실
            천은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합니다.

               어차피 성철스님은 한마디밖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한마디조차
            지금 다시 물어보면 “내 말에 속지 마라.”라고 말끔히 부정될 수도 있

            습니다. 펼치면 팔만대장경이 되고 거두어들이면 한마디조차 부정되는
            이 현장에 『선문정로』는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은 한 문장에서, 혹

            은 쉼표 하나와 마침표 하나에서, 혹은 저 넓디넓은 행간에서 우리 스
            스로 성철스님과 동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되돌아보기가 필요합니

            다. 여기에 “왜?”, “어째서?”, “이 뭣고?”와 같은 시공을 끊어낸 질문이
            바탕에 깔린다면 그런 금상첨화가 다시 없겠습니다.

               『선문정로』에 대한 해설서를 쓰기로 마음먹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
            의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천천히 읽기와 당장의 실천을 기약

            한 출발이었지만 여전히 말과 생각은 넘치고 실천은 부족할 뿐이었습니
            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좋은 인연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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