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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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문정로』에 대한 공부를 책으로 정리하

            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알기에 이런 책을 쓸 용기를 낸 것일까? 이 명명

            백백한 선문禪門의 뜰에서 앎의 대상이 될 특별한 무엇이 따로 있을 리
            없는데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공부를 더 해 갈수록 ‘알 수 없음’

            의 바다는 오히려 커져 갈 뿐입니다. 그렇다고 헛공부하고 있다고 엄살
            을 떨지는 않겠습니다. 불교 공부는 원래 까마득한 알 수 없음과의 맞

            대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알 수 없음이 커지다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밤송이(栗棘蓬)가

            됩니다. 손오공을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죄는 금강의 머리테(緊箍兒)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간절함의 화신化身으로 만듭니다. 펄펄 끓는 고

            기 솥을 핥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는 강아지의 비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그 간절함이 우리를 지금 이 현장으로 불러내고 또 거듭 나

            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절함만으로 끝난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목마른 나그네

            는 오아시스를 만나 시원한 물을 마심으로써 목마름의 낭만을 완성합
            니다. 공부하는 사람의 간절함은 깨달음으로써 그 의미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수행은 깨달음이 아니면 한때의 낭만이 되기 쉽고, 깨달음은 수행

            이 아니면 공허한 큰소리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선문정로』입니다. 『선
            문정로』는 어떤 기특한 경계 체험에도 머물지 않고 간절히 화두를 들어

            그 알 수 없음과 맞상대하여 거듭 뚫고 나가도록 몰아치는 ‘방’이고 ‘할’
            입니다. 궁극의 자유에 이르기 전까지 어떠한 경계에도 묶이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모양 없음(無相)’이고, 알 수 없음과 맞대면 하도록 한다
            는 점에서 ‘분별 없음(無念)’이며, 거듭 뚫고 나가도록 한다는 점에서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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