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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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니다. 견성성불은 견성이 성불이고 성불이 견성입니다.                   1



                이러한 주장은 『선문정로』에도 일관되지만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아예 ‘견성즉불’이라는 용어를 제시한 것이다. 원래 견성성불은 선종의
             종지로서 달마 이후 선사들의 설법에 자주 나타난다. 이에 비해 견성즉

             불은 직접적인 용례를 찾기 어렵다. 제1장의 전체 인용문에 직접 견성
             즉불이라는 용어를 쓴 예문이 발견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달마스님의 『혈맥론血脈論』에 보이는 것처럼 ‘견성하면 곧 부처다(見性卽
             是佛)’ 등의 말이 보이기는 한다.



                견성하면 곧 부처다. 견성하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중생의 본성을
                떠나 얻을 수 있는 부처의 본성이 따로 있다면 부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본성이 곧 부처의 본성이다. 본성의 밖에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곧 본성이다. 이 본성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부처가 따로 없으며, 부처의 밖에 얻을 수 있는 본성
                이 따로 있지 않다.      2



                성철스님의 견성즉불과 의미에 있어서 상통하는 관점을 보이는 문장

             이다. 성철스님이 견성성불 대신 굳이 견성즉불이라는 말로 설법을 시
             작한 이유는 분명하다. 성철스님은 완전한 최종적 깨달음인 대원각大圓

             覺만을 견성으로 본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의 견성론은 그 완전성의 강
             조에 핵심을 두고 있다. 견성한 뒤에 부지런히 갈고닦아 부처가 된다는



              1     퇴옹성철(2014), 『백일법문』(하), 장경각, p.168. 이하 퇴옹성철(2014).
              2     『達磨大師血脈論』(X63, p.2c), “見性卽是佛, 不見性卽是衆生. 若離衆生性別有佛
                 性可得者, 佛今在何處. 衆生性卽是佛性也. 性外無佛, 佛卽是性, 除此性外, 無佛
                 可得, 佛外無性可得.”



                                                             제1장 견성즉불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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