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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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구경무심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다. 깨달음에
대해서도 ‘깨달음→구경각→최후의 구경각’ 등과 같이 완결성을 강조하
는 수식어의 사용을 통해 그 본래 의미를 회복하고자 한다.
『선문정로』는 돈오원각의 수행 지침서로서 부분적 성취, 혹은 어떤
중간 지점을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라면 극단적
발언도 사양하지 않는다. 예컨대 “종문의 정안종사치고 10지보살이 견
성했다고 말한 사람은 한 분도 없다.”라는 식의 문장이 빈번하게 발견
된다. 그것은 학문적 차원에서 허다한 논의를 생산하는 시비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머물지 않는 수행을 거쳐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
한 석가모니의 길을 따르자는 지침을 제시한 것이라면 그 말은 반박 불
가능한 절대 명제가 된다.
원래 선사의 말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행자 내면의 역학 작용을 염
두에 두고 발화된다. 그러므로 선사의 말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의 입
장을 빼 버리면 죽은 말만 남게 된다. 성철스님이 ‘내 말에 속지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문정로』는 참선 수행자를 위한 지침서이지
성철스님만의 고유한 사상을 피력하기 위한 철학서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각각의 문장들은 수행자를 윽박질러 옳고 그름의 차원을 벗어
나게 하기 위한 고함이고 매질이다. 그런 점에서 『선문정로』는 미완성의
책이다. 수행 당사자가 채워야 할 빈칸을 남겨 놓은 과제물이다. 스승
의 옆구리를 쥐어박는 기특한 대답들이 이 빈칸을 채울 때 『선문정로』
는 완성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이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이라면 모든 조사들도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이다. 그 가르침이 스스로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행자의
관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제1장 견성즉불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