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정독 선문정로
P. 26

견해는 철저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견성성불은 견성해서 ‘닦아’ 부처가 된다는 뜻으
            로 이해되기도 하는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견성은 원각이 아니라 원각

            을 향한 출발점이 된다. 원오스님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자아와 대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알고 이해하는 지해를 벗어나 곧

               바로 견성성불, 직지묘심을 계단과 사다리로 삼아 인연에 상응하여
               작용하되 틀에 박히지 않는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을 쭉 오래
               실천하며 몸과 마음을 고요하고 맑게 지켜나가 번뇌의 먼지에서 벗
               어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일 중에 훌륭한 일이다.                    3


               견성을 계단과 사다리로 삼아 장구한 실천을 통해 번뇌의 먼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깨달음의 약도를 제시하고 있다. 견성한 뒤에 장구한
            닦음을 통해 부처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견성즉불은 이러한 이해를 차단하고자 제시된 용어이다. ‘견성하면
            곧 부처이다. 다시 닦을 무엇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견성이라 할 수 없

            다.’ 이것이 견성즉불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다.
               『선문정로』에는 불교 용어에 붙은 ‘관념의 때’를 벗기기 위한 노력이

            자주 발견된다. ‘견성을 하면 즉시에 구경무심경이 현전한다’는 첫 번역

            문부터가 바로 그렇다. 성철스님은 “견성을 하면 즉시 무심이 된다. (纔得
            見性, 當下無心.)”는 문장을 옮기면서 무심無心 대신 구경무심究竟無心이라
            는 말을 썼다. 무심이라는 말이 관념화되어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




             3     『圓悟佛果禪師語錄』(T47, p.784b), “截斷人我脫去知解, 直下以見性成佛直指妙心
                爲階梯, 及至作用應緣不落窠臼. 辦一片長久, 守寂淡身心, 於塵勞中透脫去, 乃善
                之又善者也.”



            26 · 정독精讀 선문정로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