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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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다. 구경무심이라야 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 이후의 닦음

            을 말한다면 그것은 궁극의 무심이 아니며 견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견성했다고 하면서 정을 닦느니 혜를 닦느니 하는 것은 아직 미세

               망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견성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고
               익힐 것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 해탈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이것이 『선문정로』의 근본 사상이다.             4



               성철스님은 견성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선종의 종지를 흐리고 정맥
            을 끊는 심각한 병폐” 라고 진단한다. 제6식의 거친 망상은 물론 제8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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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뢰야식의 미세한 망상까지 완전히 제거된 구경무심이라야 견성이다. 만
            약 수행이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구경무심을 체득하지 못한 것이므로

            견성이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그 논거를 『종경록』을
            비롯하여 『능가경』, 『대열반경』, 『대승기신론』, 『유가론』, 『육조단경』, 『원

            오어록』 등에서 찾는다.
               구경무심이라야 견성이라 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깨달음 이후에 오

            랜 시간의 점수가 필요하다는 돈오점수론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런
            데 돈오돈수가 되었든 돈오점수가 되었든 그 주장하는 방식이 배타적

            이 되면 득실이 반반이 된다. 그 주장이 여러 경전에 의해 지지될 수
            도 있고 논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철스님이 제시하는 바로

            그 전적들의 해당 문맥을 가지고도 성철스님의 주장이 정면으로 뒤집
            힐 수도 있다. 견성즉불의 논거를 경전에서 찾는 일 역시 득실이 반반

            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논의한다면 그것



             4     퇴옹성철(2015), 『성철스님 평석 선문정로』, 장경각, p.18, 이하 퇴옹성철(2015).
             5     퇴옹성철(2015),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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