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9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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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과 퇴옹(退翁)의 심성론·수행론 비교 • 239
(經書)는 주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결국 텍스트라는 권
위는 나의 마음(良知)에 종속된다. 양명은 《사서·오경》은 마음의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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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설명한 것(四書五經, 不過說這心體) 이고 내 마음의 활동 기록=주
체가 써낸 말씀의 리스트=목록[記籍]이라고 한다. 물론 ‘경서=내 마음의
기록’으로 본 것은 반드시 왕양명의 독창이 아니다. “《六經》은 모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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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의 주석(footnote)이다.”(六經皆我註脚) 라고 말한 상산(象山) 육구연(陸
九淵. 1139-1192)이 선구이다.
양명은 이렇게 말한다.
경(經)이라는 것은 상도(常道)이다. [……] 《육경》이란 요컨대 내 마음
의 상도이다. [……] 무릇 성인이 《육경》을 잘 정리하여 이것을 후세
에 남긴 것은, 비유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산이 많은 사람
이 있었는데, 그는 그의 아들이나 손자에 이르러 부동산이나 창고
에 쌓여 있는 재화를 없애고 끝내는 가난해져 생활마저 할 수 없
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집안의 재산 목
록을 만들었다. 아들이나 손자가 이것을 이용해서 그의 부동산이
나 재화를 잘 지키게 하여 가난한 생활에 대한 걱정을 시키지 않
고자 하였다.’ 즉 《육경》은 나의 마음의 재산 목록이다. 그 내실은
나의 마음속에 있다. 비유해서 말하면 그것은 그 집에 부동산이나
여러 가지 재화로 가득한 창고가 있고, 재산 목록은 다만 명칭과
형상 그리고 수량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학문에 뜻을 두는 세간 사람들은 《육경》의 내용을 자신의 마음에
60) 「傳習錄」上.
61) 象山集』卷34, 「語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