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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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불학체계와 그 특징 • 53
혜능과 신회 사이에 있었던 대화다. 같은 “ … 도 하고, … 하지 않기
도 한다.”는 문구를 썼다. 혜능은 ‘견불견(見不見)의 중도관(中道觀)’을 말
하고, 신회는 ‘통불통(痛不痛)의 생멸심’을 이야기 했다. 대화를 통해 혜
능은 신회에게 생멸심을 버리고 ‘중도관’으로 나아가 자성(自性)을 체득
하도록 유도한다. 『육조단경』의 이 단락에 사용된 어구가 “ … 도 하고,
… 하지 않기도 한다.”이다. 인용문 [1]과 비슷한 구조다. “이렇고 이러하
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그러면
‘중도관’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퇴옹이 이런 어법을 사용한 것일까?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는 구절
에 막힌다. ‘껍질[殼]을 벗고[脫] 날아가려던 매미[金蟬]’가 여기에 다시 묶
였다. 이런 빗장 저런 빗장이 구절마다 채워져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는 헤아리거나 따지지 말고 ‘곧바로
깨닫게’[直覺] 하려고 내세운 장치인가? 아니면 그저 보기 좋은 ‘황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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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채워진 관문’[金鎖玄關] 에 불과하니, 황금 색깔에 눈멀지 말고 문
을 두드려 조각내고[擊碎] 지나가도 된다는 구절인가? 상식으로 헤아릴
97)
수 없는 큰 인물인 ‘몰량대한(沒量大漢)’ 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기도 어
렵다. 이래도 막히고 저래도 막히게 하는 이런 논법은 사실 용수가 『중
天地人過罪, 所以亦見亦不見也. 汝亦痛亦不痛如何?’ 神會答曰: ‘若不痛, 即同無情木石;
若痛, 即同凡, 即起於恨.’ 大師言: ‘神會! 向前見不見是兩邊, 痛不痛是生滅. 汝自性且不
見. 敢來弄人?’ 神會禮拜, 更不言.” 퇴옹(1991), 239.
96) 『佛果圓悟禪師碧巖錄』(T48, 212c), “擊碎金鎖玄關.”
97) 『法演禪師語錄』(T47, 658a), “中間有箇沒量大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