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15년 4월호 Vol. 24
P. 31

은 큰 원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도
                 성출입이 허용되자 당시 산중 스님들은 한양 가서 도성 구
                 경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습니다. 그때 어느 날 누가 “큰스님

                 께서는 도인이시고 목청도 좋으시니 이제 도성으로 가서 포
                 교를 하시면 큰 성취가 있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하니 “내
                 평생 소원이 경성 땅을 밟지 않는 것이다.”하고 경허 스님이
                 말했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스님은 치열한 역사의식을 가지

                 고 조선조 500년 동안 법난을 당하고 선풍이 쇠퇴한 것을
                 다시 세워 개화기와 근대를 준비하는 인재양성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허 스님의 문하에는 혜월, 수월, 만공, 한암, 제산 등 훌

                 륭한 선사들이 배출되어 근현대에 수덕사, 마곡사, 용주사,
                 법주사, 금산사, 불국사, 월정사, 직지사 등이 문도 스님들이
                 운영하는 사찰이 됩니다.
                   용성 (龍城, 1864~1940) 스님

                 은 3 · 1독립만세운동을 주도
                 한 33인에 불교계를 대표하
                 여 참가한 분으로 유명합니
                 다. 스님은 출가하여 치열하

                 게 참선하던 23세에 오도송
                 을 읊었습니다.
                   1911년 용성 스님은 종로
                 에 대각사를 창건하였는데,

                 참선 도량이자, 독립운동의                             용성 스님 진영


                                                                   29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